충남대학교

일본지역세미나

아픈 역사와 아름다운 사진이 공존하는 대전 철도 관사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철도관사촌,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로 나아가

2026. 6. 13.

철도 관사촌의 역사

대전은 철도와 함께 만들어진 도시다. 1904년 경부선이 개통되고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두 철로가 만나는 대전은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고, 대전역과 가까운 소제동은 철도 관련 일을 하던 사람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소제동 자리에는 본래 소제호라는 호수가 있었다. 일본은 철도 종사자들의 관사를 짓기 위해 1927년 소제호를 매립했고, 1930년대 들어 1935년까지 100여 호 이상의 관사를 세워 일본인 철도관사 마을을 이루었다. 호수를 메운 흙은 인근의 산을 깎아 충당했다. 관사는 석기와 지붕과 가로살 창을 갖춘 일본식 가옥으로, 가늘고 길쭉한 형태가 특징이었다.

해방 이후 관사들은 적산가옥으로 남아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고, 철도청 직원들에게 인계되어 철도관사 마을로서 명맥을 유지했다. 한국전쟁 이후로는 대전 시민들이 70여 년간 살아온 곳이기도 하다. 일본식 건축 양식 위에 한국인의 생활 방식이 겹쳐지면서,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소제동만의 모습이 자리 잡았다.

오랜 세월 동안 소제동은 주변의 개발과 변화 속에서도 옛 가옥과 미로 같은 골목, 그 안의 일상을 이어왔다. 그러나 2003년부터 대전역 역세권 개발 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세입자들이 떠나고 빈집이 늘어났으며, 골목은 본래의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2010년대 후반 도시재생 기업의 주도로 오래된 관사들이 카페와 음식점으로 새롭게 단장하면서, 소제동은 다시 사람들이 찾는 동네가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40여 채의 철도관사가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남은 철도관사촌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철도 관사촌의 현재

관사촌의 운명은 오랫동안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흔들렸다. 2009년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계획이 결정되면서 소제동은 도시환경정비사업 지역으로 지정됐고, 관사촌이 포함된 삼성4구역은 2016년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설립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며 재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노후한 지역을 빨리 활성화해야 한다며 재개발에 무게를 싣는 주민·토지 소유자와, 문화재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며 철거에 반대하는 측의 입장이 맞섰다.

같은 시기 빈집이 늘어가던 동네에 변화가 시작됐다. 2010년대 후반 지역 리브랜딩 기업 익선다다의 주도로 오래된 철도 관사들이 카페와 음식점으로 새롭게 단장하며 하나의 거리를 이루었다. 현대식 건물과 양옥, 일본풍 관사가 어우러진 풍경 덕에 소제동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다. 다만 외지인이 소유한 관사가 잇따라 카페로 바뀌면서, 동네가 상업 공간으로만 채워진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여러 논의 끝에 관사촌은 일부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전시는 대전역세권 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철거되는 철도 관사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철도 교통 중심지라는 지역 정체성을 살려 '소제동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관사촌은 일부 상업시설을 제외하면 도시관리계획상 공원 및 문화시설로 지정되어, 문화유산 보존과 문화시설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관사 4채를 국가등록문화재로 신청했으나, 관사 본래의 구조 형태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선정되지 못한 일도 있었다.

오늘날 소제동에는 40여 채의 철도관사가 남아 있다. 팔남매집, 핑크집, 두충나무집처럼 '소제동 아트벨트'로 지정된 관사들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 새로운 쓰임을 얻었다. 호수를 메우고 관사를 세운 과거와 빈 관사를 카페가 채우는 현재가 한 골목 안에 겹쳐 있는 것이, 지금 소제동의 모습이다.

앞으로의 철도 관사촌

앞으로의 철도 관사촌

관사촌이 마주한 질문은 결국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있다. 10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켜 온 이 집들은 일제강점기 철도 건설의 흔적이자, 해방 이후 서민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며, 오늘날에는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은 동네다. 시대마다 쓰임이 달랐던 만큼, 어느 한 시기의 모습만으로 그 가치를 정하기는 어렵다.

남은 과제는 보존과 활용의 균형이다. 관사를 원형 그대로 묶어 두기만 하면 빈집으로 방치될 수 있고, 상업 공간으로만 채우면 동네가 가진 역사의 결이 희미해진다. 카페로 바뀐 관사들이 활기를 되찾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떠나는 문제도 함께 따라왔다. 보존이 박제가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방식으로 이어질 때, 관사촌은 비로소 본래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기록을 남기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 관사 본래의 구조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문화재 지정이 무산된 사례는, 보수와 개조가 거듭될수록 원형이 옅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남아 있는 40여 채가 더 줄어들기 전에 그 형태와 내력을 정확히 기록해 두는 것은, 이곳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하든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소제동 철도 관사촌은 침략의 역사 위에 세워졌지만, 그 위에 여러 세대의 평범한 삶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다. 지우거나 허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면, 남은 집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무엇을 이어 갈지를 정하는 것이 다음 세대의 몫이다. 호수가 메워지고 관사가 들어선 자리에서, 소제동은 다시 한번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참여 정보

소속 대학

수강 교과목

일본지역세미나

지도 교수

김학순 교수

참여 학생

서지훈(일어일문학과)

뒤로

34134

|

충남대학교 산학연교육연구관 2층 C룸, 캡스톤디자인 운영지원실

문의

|

042-605-3609

연관 사이트

© 2026 Daejeon Urban Architecture Festival Forum | All rights reserved.

34134

|

충남대학교 산학연교육연구관 2층 C룸, 캡스톤디자인 운영지원실

문의

|

042-605-3609

연관 사이트

© 2026 Daejeon Urban Architecture Festival Forum | All rights reserved.

34134

|

충남대학교 산학연교육연구관 2층 C룸, 캡스톤디자인 운영지원실

문의

|

042-605-3609

연관 사이트

© 2026 Daejeon Urban Architecture Festival Forum | All rights reserved.